8월 2일 2025

아무래도 지겹다. 분배를 잘 했어야했다. 나의 예민함을 감당할 수 있는 이가 얼마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는 일은 줄곧 감사하다. 몇몇 사랑은 그렇지 않다. 내가 채워줄 수 없거나 채워주고 싶지 않은 사랑을 갈구한다. 그런 관계에서 마음을 쓰는 쪽은 비참해지곤 한다. 어쩌면 그 비참함을 즐기고있나? 정말 아닌 것 같은데.

안도현 작가의 연어를 조금 읽었다. 연어를 의인화하여 사람처럼 묘사한 것이 재밌다. 많은 창작물들은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한다. 가끔 아름다운 창작들을 보면 심술이 나기도 한다. 저렇게 교훈적이고 아름다운 묘사가 저런 상황에 가능했단 말인가. 세상을 너무 아름답게 보는 척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로 심술이 난 것이다.

전시와 시를 쓰기 위해 더 공을 들여야겠다. 시간이 얼마 남지않았다. 전시도 공모도.

7월 28일 2025

고독이 시작되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내 노력과 결정에 의해서 많은 것이 흘러갈 거라는 착각이다.

혼자가 편한 기분은 불현듯 찾아왔다. 철학과 결심 등과는 거리가 먼 감정들이 불쑥 놀러왔고 난 그들을 내쫓을 수 없는 집주인이었다. 제발 나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어도 나가지 않았겠지만. 힘이 없었다. 컨디션 난조로 인해 겹겹이 쌓이는 감정을 풀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신념에 앞서 행동했다. 술을 찾지 않았고 날 불편하게 만드는 환경으로 향했다. 결국 나아지는 것에 일조했던 것은 음악과 한강이었다. 집에 가지 않았고 친구를 부르지 않았고 낯선 이를 찾지 않았다. 홀로 서는 것이 내게 이롭다는 결심을 지킨 것은 역시나 잘한 일이었다. 규율을 지키면 궤도에서 이탈하진 않을 수 있다.

여름이 지나가면을 극장에서, 작업실에서 키즈리턴을 마저 다 보면서 영화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무얼 하기에도 늦지 않았다. 생 앞에서 생은 그런 것이다.

7월 25일 2025

몸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술을 멀리하고 음식을 절제하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다. 객기를 피하고 책임질 수 있는 말을 뱉는다. 친구들과 진지한 대화를 하고 나의 의견을 솔직하기 이야기한다. 에너지가 소진될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생각을 표현으로 옮긴다.

밤바람마저 뜨겁게 느껴지는 여름이다. 풀벌레소리가 들리는 곳에 살지 못하여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달밤에 노래를 듣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던 시기엔 누군가의 말도 듣지 못하는 법이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단어에 예민한 사람이 된다. 문단은 커녕 문장도 듣지 못하는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온갖것을 부정하고 사람을 멀리하게 될 수도 있다. 구태여 사랑하는 것을 피하지 말자. 한 사회에 오래살다보면 관습이 자신을 감싼다. 신발끈이 풀린듯 묶는 것이 자신의 족쇄이다.

7월 23일 2025

그리울 도쿄를 떠난다. 정감 안 가던 도시가 마음 속으로 다가오기까지.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 음, 멀고 험한 길도 가볍고 편한 길도 섞어가며 가야겠다 다짐했다.

한국에서의 스케쥴이 바쁘다. 만나자는 사람들은 많은데 만나고픈 사람은 정작 연락이 없다. 이쯤되면 순서가 바뀐 구조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허나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난 그저 할 일을 지속해서 할 것이고 때가 되면 하나둘씩 만나겠지. 그것만큼 정당한 방법이 없다.

물질적으로 받았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며 망각된다. 항상 식사를 사준 사람은 100만원어치를 기억하지만 받은 사람은 한 30-40만원 어치인 줄로 기억하능 것이다. 잘 기억하는 이들도 있지만 많은 것들은 익숙함, 더 우선 순위인 것들에 대한 집착으로 묻혀간다.

사랑의 성질은 조금 다르다. 항상 사랑을 준 이는 그 마음에 대해 미련이 없지만 잘못을 저질렀거나 받는 쪽에 있으면 시간이 지나며 증폭되는 것이다. 뒤늦게 깨달은 것들은 줄곧 더욱 미화되고 녹아내려 기억의 빈자리 속으로 흘러들어간다. 마음이 그렇게 무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시간에 대한 통찰이 있는 이들은 줄곧 그때그때 솔직한 표현을 하려고 한다. 이때 솔직함이란 것은 직설적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미련을 덜 할 언행을 선택하고 상대와의 관계를 고려해 이로운 표편을 하려고 한다. 사려깊은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더욱 잘 설계된 화살촉을 상대에게 꽂을 수 있다. 뽑으면 출혈이 심할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은 뽑기가 어려워 상대는 줄곧 화살을 맞은 채로 살아가게 된다.

7월 19일 2025

한여름 도쿄의 햇빛은 열심히 정돈된 머리도 밀짚모자를 쓰게 만든다. 밖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도저히 숨이 안 쉬어져 카페를 찾게 된다.

다이토구에서 신주쿠구로 숙소 이동을 하는 날이다. 체크아웃 시간과 새로운 숙소의 체크인까지 6시간 정도가 뜬다. 일찍 도착했지만 숙소에 짐을 맡길 수가 없어 근처 카페에 들렸다.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면 물감 생각이 난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캔버스 생각이 나고 그렇다. 사실 이런 것들은 반대로도 적용된다. 무언가를 그리는 일만 그럴까. 삶에서 느끼는 많은 것들이 권태와 안정을 왔다갔다 하며 변화를 만든다.

말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다. 들뜬 기분엔 어떤 소리던 쏟아내곤 했다. 나이를 먹으며 꽤나 과묵해졌지만 생각이 조용해진 것은 절대로 아니다. 처세와 체력의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성숙의 차원이라 여기지 않는다. 다양한 색채를 가진 것은 호기심이 많은 어린 아이뿐만이 아니다. 단조로워지는 노인의 삶에는 덮어씌워진 흔적들이 존재한다. 아무도 긁지 않아 겹겹이 쌓은 레이어가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나의 경우엔 그 레이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외로운 덧붙힘을 드러내지 않아도 덧칠한 자국은 마음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담뱃불을 꺼뜨리며 줄곧 집을 그린다. 내 눈엔 선명히 보인다. 그립다 집이. 어린 시절의 집 말고는 깊이 그리워해본 적이 없다.

배가 아픈 것이 참 고통스럽다. 순리였음을 납득하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픈 것은 아픈 것이다. 고통 앞 나약해지는 자신이 싫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건강문제에 대해선 아무도 공감해줄 수 없음을 알고는 혼자가 되어버린 어린 아이가 보인다.

7월 18일 2025

내가 기록을 하는 여러가지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억력 문제다. 누군가도 공감할 이유겠지만 내 경우에는 그 과중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마치 어린 아이가 남들이 아픈 줄은 모르고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게 되는 경우처럼 말이다. 사실 어린 아이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오늘 아침 옷을 입으며, 담배를 한대 피우며 삶의 결정적인 철학을 얻은 듯 하였으나 금새 까먹고 말았다. 이렇게 얻고 비워지는 생각들이 하루에 40가지 정도가 되는 것 같다. 때로는 이 형편없는 몰입감에 감탄스럽기도 했다. 생각을 잊는다는 것은 그 생각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오래 끌지 못하니 새로운 것들이 찾아온다.

그렇다면 기록을 하는 이유가 다시 복기하기 위함이냐. 그것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이것은 아마 진실되게 이타적인 행위다. 머리가 나빠서 회전율이 높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들이 누군가에게 영감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잠깐 지하철을 탔을 뿐인데 글 쓰는 의도를 까먹고 말았다.

저녁 나절이 되어서.

당신이 안정을 추구한다면 나는 누구보다 안정적이지 못하다. 안정적일 수 없다. 허나 당신이 안정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면 난 그 누구보다 안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엠비언트가 그렇다. 선과 여백이 그렇다. 소음이 그렇다. 자연의 소리가 그렇다. 걷는 것이 그렇다. 배고플 때 밥을 먹는 것이 그렇다.

의지의 차이가 곳곳으로 연결된다. 마음의 변화가 행동을 만든다. 철학이 사람을 존재하게끔 한다.

7월 17일 2025

도쿄에서.

하루가 차분했음에 감사하다.

몸은 영 꽝이었지만 아주 고통스럽진 않았다.

여전히 꿈을 꾸고 감사함을 유지하려고 한다.

시도때도 없이 분개하지만 잘 눌러담을 수 있다.

나의 무게가 무엇을 누르고 있는지 잘 생각해본다.

젖혀지는 고개가 싫어 목에 힘을 주고있다.

필사적으로